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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한효익 씨> 꿈을 꾸게 하는 삶이라는 판타지

꿈을 꾸게 하는 삶이라는 판타지

사람들의 일상에 소소한 판타지를 선사하다

경산시 한효익

 

 

벼랑 위의 꿈

우리는 막다른 인생의 에서 일상의 을 발견한다. 중학교 2학년, 고작 15살이라는 나이에 삶의 막다른 곳에 홀로 내쳐진 한효익 씨는 스스로 일상의 을 찾아냈다. 학교가 끝난 저녁 6시부터 막차가 끊기기 전 11시까지. 가내수공업으로 돈을 벌어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했던 그의 삶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한 달을 꼬박 일해서 벌수 있는 돈은 고작 50~60만원, 이것마저 월세와 공과금에 쓰고 나면 공납금은 또다시 밀리기 일쑤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납금을 벌어 학교에 다녀야 했기에 인문계가 아닌 마산공고로 진학했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공부하니 첫 시험에서 13등을 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나도 공부를 하면 되는구나하고요. 그때부터 암기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니 다음 시험에는 7등을 하더라고요. 생애 첫 한자리 등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계속 성적이 올랐어요.”

 

삶은 문득문득 뜻밖의 행운을 불러온다. 그 시절 그에게는 담임 선생님이 그런 존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현재 그의 양어머니다. 누구보다 그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그런 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담임 선생님은 그의 꿈을 처음 물어본 어른이기도 했다. 그 시절, 그의 꿈은 공군사관생도였다. 인문계에서도 가기 힘들다는 공군사관학교는 그에게 멀고도 큰 산과 같았지만 담임 선생님은 생활비까지 지원해주시며 열렬히 그의 꿈에 힘을 실어주었다.

 

공군사관학교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던 중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어요. 좌심방이 터지고 폐가 찢어지는 등 온몸을 크게 다쳤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수능을 볼 때 저는 병원 신세를 지어야만 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삐뚤어졌습니다. 선생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방황 했죠. 하지만 그러던 중에 마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꿈은 처음 모습만 보면 훗날을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날, 꿈은 현실이 되어 우리의 눈앞에 서 있다. 그에게 마술의 첫 모습은 뚜렷한 형체가 아니었다. 홀로 고군분투하며 배우고, 경험을 쌓아가니 마술은 어느새 그에게 마술사라는 직업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그의 현실이 된 꿈은 또 다른 누군가가 꾸고 있는 꿈일 것이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렵게 꿈을 키워가고 있는 후배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마술 공연을 통해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결국 벼랑 위에 있던 그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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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다, 마음을 담다

그는 봉사를 시작한 지 7년 정도가 되었다고 말했다. 작은 봉사단체에 들어가 김장 봉사부터 재능을 살린 마술공연까지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비교적 일찍 자리를 잡은 그는 곧잘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떠올렸고,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8살에 지금은 제 양어머니이신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저같이 어려운 친구를 추천해달라고 말했어요. 많이 주지는 못하더라도 학비 정도는 지원해주고 싶다고 말이죠. 그런데 웃으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이제는 국가에서 공납금이 다 나온다고 말이죠. 그래도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는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은 싫다고 단호히 말했다. 충분히 여유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해달라며 막무가내로 전화가 올 때는 언제나 곤란하다는 마음도 전했다. 그가 진짜 봉사를 하고 싶은 곳은 진심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다. 마술 공연과 같은 특별한 공연을 잘 볼 수 없고 공연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더 많은 재능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또한, 공연이라는 것이 혼자가 아니라 팀이 함께하기에 그는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모두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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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에서 길어올린 기쁨

한번은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요양원에서 무작정 연락이 왔기에 일단은 거절했지만 몇 번이고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복지사의 정성에 봉사를 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전까지 연락이 없어 직접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저에게 연락 주신 복지사가 그만 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순간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약속이기에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하고 왔는데 처음으로 보람보다는 회의감만 느꼈습니다.”

 

누구나 많은 것을 바라고 봉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닐뿐더러 혹여나 바랐다고 하더라도 결국 실망감만 안게 될 뿐이다. 그가 그저 바랐던 것은 요양원까지 방문하는 주유비도, 한낮 종이 감사장도 아닌 공연을 보고 순수하게 기뻐하는 관객들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때때로 봉사로 인한 기쁨보다는 허무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또다시 재능을 나누고 봉사를 하는 이유는 그 웃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공연을 하러 갔을 때, 제가 수익을 벌기 위해 하는 공연과 봉사 공연의 반응차이가 참 크게 느껴집니다. 물론 두 공연의 관객들 모두 즐겁고 기뻐하시긴 하지만 봉사를 하러 갔을 때의 관객들 표정은 정말 해맑고 행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때때로 연예인이 온 것처럼 환호해주실 때는 정말 봉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보람을 느낍니다.”

 

진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진심이 통하는 순간들이 있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표현마저 솔직한 그들은 그가 봉사를 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어준다. 맑은 웃음과 열띤 호응,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는 그의 재능 나눔에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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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에서 희망을 만나다

여유는 자신 스스로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마음속으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여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물질적인 여유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도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녹록지않은 현실 속에서도 여유를 찾는다.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뜻밖의 사소한 발견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그에게도 현실이 전부가 돈이었던 순간이 있었다.

 

공납금을 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학창시절, 하지만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도 삶의 여유를 잃지는 않았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가고, 어차피 이것도 내일이 되면 지나갈 일이기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매일 굳게 다진다고 그가 말했다.

 

자원봉사센터의 추천을 통해 여러 곳에 봉사를 나갔다가 굉장히 낙후된 지역의 아동재활원에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저희 공연을 보고 마술사라는 꿈을 가지게 돼서 저희 사무실에 찾아와 연습하는 것도 보고 공연을 따라가서 본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그 친구가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아 진심으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희망이 내일을 살게 한다. 그가 그러했고 지금 마술사를 꿈꾸는 아이도 그러할 것이다. 내일이 더 밝을 것이라는 기대가, 꿈꿀 수 있는 기쁨이 오늘을 버틸 힘을 주기도 한다. 재능 나눔을 통해 그의 꿈이었던 마술이 한 아이의 꿈이 되었다. 그저 가진 것을 나누었을 뿐인데 그 나눔이 한 사람의 희망이 된 것이다. 내일을 살게 하는 희망. 그 희망이 피어오르는 순간 마침내 우리 삶의 판타지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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